형제의 아픔 가족

29일 일요일 아침에 막내가 전화를 했다.
제수가 갑자기 유방암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자연 요법을 따라 두 군데를 옮겨가며 치료를 했었는데 나빠졌단다.
수술은 잘 되어서 일주일이면 퇴원한단다.
장모가 간병을 하고 막내동생은 토요일에 올라왔단다.

둘째에게 전화를 했는데 나와 셋째에게 알리지 않은 것을 알고 전화한 것이다.
둘째와 토요일 밤을 새우다시피 한 모양이다.
낮 예배를 마치고 올라가겠다고 하고 끊었다.

잠시 후에 다시 벨이 울려 전화를 받으니 둘째의 목소리다.
막내로부터 나와 셋째 찬형에게 전화를 하니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다.
전에 수술했던 판막을 다시 수술해야 하고 다른 쪽에 판만을 더 해야 한다는 수술이라는 것이다.
지금 준비 중에 있고 주중에 금요일 쯤에 수술할 예정이란다.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설상가상이다 .
이제 나이를 먹었다는 게 다시 실감이 난다.
건강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것에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

찬형은 우리 4형제 중에 가장 어려울 때 태어나서 가장 약골이다.
그래도 내가 병치레는 더 했는데....
결혼하여 무릎에 혹이 튀어 올라 진단을 해보니 심장에 구멍이 나서 그런 것이라며 판막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갓 시집 온 제수가 몹씨 놀랐고 그래도 의학이 발달하고 젊어서 담담히 수술을 맞이했다.
그 후 두 번을 더 하는 동안 제수가 겪은 고생은 누가 알겠는가.
나도 다 모른다.

거기에 직장에서 팔이 기계에 물려 들어가 수술까지 해서 팔은 모양만 나쁜 것으로 끝나는 수난을 겪었다.
작년 겨울엔 1달 반을 입원했단다.
치료비가 이제 엄청남 부담이다.
이번엔 또 수술을 해야 하는 부담이다

낮예배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고 아내와 서둘어 집을 나섰다.
서울대학교 병원에 들어가 7401호에 들어서니 간호사 남녀가 붙어 동생을 이동용 침대에 옮기고 있었다.
제수와 제수의 막내 남동생을 보았다.
동생은 온 몸이 부어서 보기에 정말 힘이 들었다.
동생은 말이 없이 간호사의 지시에 순응하고 누웠다.
올라오며 동생과 통화하였는데 목소리가 너무 가라 앉아서 걱정했는데 직접 보니 더 나쁜 상황이다.

말 없이 엘리베이터로 2층으로 내려와 동생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제수와 얘기를 나누는데 서로 눈물이 앞선다.
제수는 이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없고 사는 게 지겹다고 했다.
직장에서 일을 해도 희망이 없고 죽어라 일을 해서 벌어도 한달 약값과 병원비에 댈 수가 없었단다.
하나씩 벌어놓은 것 없애고 있다고 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가 없다.
아내가 무슨 말로 위로를 하자 세상 사는 게 다 싫단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 세상이 원망스럽단다.
딸 둘도 결혼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할거란다.
그러면서 우리를 보고 있는 것도 괴로우니 가라고 한다.

나는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서 울었다.
동생의 아픔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주지 못하는 큰형이 너무 미안하다.
무력감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이게 어렸을 때 부모 밑에서 함께 지낸 형제의 나이든 모습인가.
걱정만 해주었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게 별로 없다.
큰형이란게 경제적으로 부유해서 물질적으로 도움만 준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형제라도 나이 먹으면 자기의 가족이 있으니 그 가정을 꾸려나가기에도 넉넉함이 없다.
결국 형제도 어렸을 때 형제이지, 출가하면 다 각각의 가족과 가정을 가진 남남이 되는가.

제수의 강제적인 내쫒음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동생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오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제수의 삶이 더 아팠기에 살 날을 위로해야 하기에 마지못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찬형이 심장수술을 한 뒤로 우리 형제들 중에 제일 먼저 하늘나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게 정말 눈 앞에 닥친다면 어떨게 해야 하나?

부모님이 생각나고 간절히 보고 싶다.
아버지, 어머니,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두 분이 뿌려놓은 자식 하나가 저렇게 생사를 다투며 아파요.
정말 동생에게 미안하고 아버지, 어머니께 죄송해요.

고려대 안암병원은 나무들이 있어서 언덕에서 사방을 내려다 보는 전망이 탁 틔여서 시원하였다.
막내제수는 수척하였지만 피차간에 살 수 있다는 얼굴이다.
많은 얘기를 하였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여자 장로님의 유방암 수술과 쾌유, 그리고 여성의 멋을 가꾸며 사는 얘기도 나누었다.
저녁식사도 함께 하였다.
우리 모두 찬형의 걱정을 하였다.

30일 오늘 막내 제수에게서 아내에게 "형님도 어려울텐데 고맙다"는 문자가 왔단다.
양쪽에 각각 1백만원씩 주고 왔다.
하지만 찬형에겐 너무 적은 돈이다.
당장 더 줄 수 없음에 미안함이 태산 같다.

오늘 가정예배에서 아내의 제의로 동생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였다.
아내가 마무리 기도까지 하였다.
하은, 하람, 하영의 수족구에 대해서도 기도를 하였다.
제발 모두 다 낫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끄적

이제 봄이 완연하다.

산수유꽃, 생강나무꽃, 벚꽃, 목련꽃 등은 이미 졌고
들엔 제비꽃, 민들레꽃, 애기똥풀, 노랑꽃 등이 만발한 모습이다.

내가 출근하고 퇴근하는 길 옆엔 민들레와 애기똥풀의 노란색 세상이다.
비가 와서 논에 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모내기를 일찍 마친 논도 보인다.
냇가의 버들강아지도 지고 잎새가 무섭도록 녹색을 짙게 물들이고 있다.

밭은 매일 바뀌고 있다.
시장에 나가 보면 많은 모종을 늘어 놓고 파는 게 보이는데
밭에는 콩, 옥수수, 호박, 수박, 참외, 고구마 등의 모종이 심기더니 이제 고추도 심겼다.

올해의 날씨는 덥다 춥다 변덕스럽지만 농사꾼들은 계절을 미리 읽고 나간다.
어느새 심긴 모종들은 이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창 자라다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소쩍새가 그토록 울어야 아름다운 소리는 내듯
세월의 변화를 읽어 나가는 농군들의 지혜는
공해에 찌들려 매일 오늘에 갇혀 사는 도시인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그것도 들어 나가보지 않으면 누가 아랴.

산에 있는 나무들도 수줍은 연한 녹색 색깔을 내고 나오더니 이제 제법 푸르고
산을 덮어 속을 감추었다.
분홍빛 산벚꽃과 진달래가 나무잎의 녹색과 함께 산을 어우러진 색깔로 덮는다.

하늘에 하얗게 줄을 남기고 가는 비행운은 파아란 하늘에 얼굴을 내민다.

해가 길어져 아침 출근길에 보는 해의 위치도 달라졌다.
저녁의 노을은 황량하지 않고 들판의 푸르름 위에 붉게 지는 태양의 지지 않으려는 몸짓이다.

Spring!

봄을 영어로 읽을 때 우리말은 '스, 프, 링'이라는 세 글자이지만
영어로는 한 음절의 글자이다. 

봄, 용수철, 샘의 뜻을 가진 이 글자가 내 가슴 속에서 무언가 솟아오르고 튀어오르고 밀고 올라오는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의미를 그대로 담았다. 



 

봄 소식 산행

아내와 일요일 오후에 뒷산에 올랐다. 새싹들이 나고 진달래 가지에 꽃몽오리가 움트는 게 보인다. 생강나무 꽃도 보이고 여기 저기 새싹들이 많이 보인다. 성불사 연못에 개구리 알들이 뭉글 뭉글 올라와 있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은 다 녹고 물 속에서 고기가 놀고 있다. 물 속에 나무들이 다 보인다. 아파트 앞 돌벽에 늘어뜨린 개나리가 피어서 더욱 반가왔다.

진정한 성공이란 좋은 글

진정한 성공이란


-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서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때 이 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언제나 '지금'이 가장 춥고 가장 힘들게 느껴진다 좋은 글

우리는 통계 숫자로 사는 게 아니라, 그해 여름 그해 겨울을 살기에 언제나 그해 겨울과 그해 여름이 가장 춥고 더워요. 덥지 않은 여름이 없고, 춥지 않은 겨울이 없듯이 역사도 수월할 때가 없었을 겁니다... (30p)
 
전우익 지음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중에서 (현암사)
날씨가 원래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사도 그렇겠지요. 요즘의 추운 날씨에 "이렇게 추운 겨울은 처음이야"라는 말을 하다, 문득 7년 전 썼던 경제노트가 생각났습니다. 2004년 1월28일의 '겨울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우리라'라는 글이었습니다.
 
그해 겨울도 몹시 추웠나봅니다. 사람들은 요즘의 우리들처럼 그해 겨울이 제일 춥다고 말들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7년 뒤인 올해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1년 전 겨울도 폭설이 쏟아졌던 '대단한 겨울'이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렇듯 2004년이나 2010년의 겨울은 잊고 '지금의 추위'가 가장 심하다고 느낍니다.
 
오늘 신문 1면에 '춥다 춥다해도… 서울 작년 1월이 더 추웠다'라는 기사가 보이더군요.(조선일보, 2011.1.18) 서울에서 기온관측이 시작된 1908년부터 2011년까지의 1월 1일~16일 기상청 기온자료를 분석해보니, 올해가 '역대 20~30위 정도'로 추운 해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생각보다 후순위입니다. 특히 작년보다 올겨울이 덜 추웠던 것으로 집계됐다는군요. 같은 기간 작년의 평균기온은 영하 7.5도, 평균 최저기온은 영하 10.7도로 올해보다 섭씨 0.5~0.8도 더 낮았습니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날도 작년은 10일이었던 반면 올해는 8일이었습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는 '통계 숫자'로 사는 게 아니라, '그해 겨울' '그해 여름'을 살기 때문에 언제나 그해 겨울과 그해 여름이 가장 춥고 가장 덥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지금의 추위'는 절실하게 느껴지지만 '과거의 추위'는 쉽게 잊혀지곤 하지요.
지금 이렇게 춥게 느껴져도, 머지 않아 봄은 옵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100년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의 추위도 지나갑니다.
 
어디 계절만 그렇겠습니까. 경제도, 개개인의 인생도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항상 지금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고, 그래서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무리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원래 한 나라의 역사건 개인의 인생사건 쉬운 때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지금'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라 생각하고 씩씩하게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지금 추운 건, 지금 힘들고 어려운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2011.01.18. 예병일의 경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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